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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얼카덩어리저작권 : 가창자 : (메)박성진 (받)김만호,유병돈,고길서 등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황룡2리 송중 곡해설 : 송중(松中)마을에서는 양력 4월5일경에 볍씨를 담그며, 4월 15일~4월 20일에 모자리를 만들었다(곡우 낙종). 6월 7,8일 망종때 올모를 심고, 하지때 중모를 심었다. 비가 안오면 늦모를 소서까지도 심는다. 모심은지 20일후에 걸망하고 또 10일후에 호미로 애벌매고 10일후에 호미로 두벌매며 그다음 10일후에 손으로 만물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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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얼카덩어리저작권 : 가창자 : (메)김인구 (받)김중현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곡해설 : 재정리(才井里)에서는 1980년까지도 논을 맸다. 논매던 시절 논이 밭보다 더 많았으며, 그당시 120가구가 살았다(녹음당시는 60가구). 모심고나서 20일 있다가 ‘걸망’을, 열흘 후에 호미로 아시매기를 했으며, 또 열흘이 지나고서 두벌을 호미로 맸다. 두벌후 열흘이 지나면 손으로 만물지심을 맸다. 6.25사변전까지 두레논매기를 했다. 1가구 1명씩 100여명이 두레논을 매는데, 농본기,영기를 앞세우며 꽹.징.장구,북수가 뒤따랐다. 소고는 없었다. 만물매고나서 소타고들어오는 장면은 없다.(김중현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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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얼카덩어리저작권 : 가창자 : 김관제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곡동(구 대천시 남곡1동 탑동) 곡해설 : 얼카덩어리 류는 충남을 대표하는 논매기소리로서 그 문화중심은 홍성,서산,당진과 같은 서북부 충남지방이다. 보령지방은 그 전파의 남쪽 끝이다. 보령 내에서도 주로 북쪽과 동쪽에 전해져 있고, 동남부 보령시에서는 수집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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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아시매기소리저작권 : 가창자 : 임창빈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남곡동 곡해설 : 2.먼들소리; 얼마 안남고 삥 둘러쌌으며는, 일단 한번 일어섰다가 엎드리며 “웅굴이여 -”하고 선입후제창으로 외친다. 그런 후, 일어서면서는 “위-”하고 외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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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얼카덩어리저작권 : 가창자 : 정진옥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궁포리 곡해설 : 얼카덩어리 류는 서천군을 제외한 충남 일대와 한강 이남의 경기도 일부지역에 분포한다. 만물 때는 긴 산요소리를 부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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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얼카뎅이저작권 : 가창자 : 최은철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2리 곡해설 : 얼카덩어리 류는 서천군을 제외한 충남 일대와 한강 이남의 경기도 일부지역에 분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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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카덩어리 2.옹골소리 류저작권 : 가창자 : (메)최연순 (받)최기용 등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 곡해설 : 얼카덩어리 류는 서북부 충남지역이 문화중심인 논매기소리로, 서천군을 제외한 충남 일대와 한강 이남의 경기도 일부지역에 분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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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카덩어리 2.옹골소리 류저작권 : 가창자 : (메)최연순 (받)최기용 등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 곡해설 : 얼카덩어리 류는 서북부 충남지역이 문화중심인 논매기소리로, 서천군을 제외한 충남 일대와 한강 이남의 경기도 일부지역에 분포한다. 옹골소리 류는 논매기를 마칠 무렵 에염쌀 때의 긴소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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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콰덩이야 2.술미저작권 : 가창자 : 편무안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리 곡해설 : 장고도에서는 음력3월말에 볍씨를 담그고 4월말에 모자리하였다. 한달남짓지나면 모를 쪄서 심었다. 논이 많은 집은 열마지기정도였다. 모심고나서 보름후에 손질(걸망)한다. 손질후 열흘있다가 호미로 파엎었고, 또 열흘 있다가 손으로 만물을 맸다. 논에 꼴뚜기가 많았는데, 만물에 흙탕물만 치고다니는 사람을 ‘꼴뚜기’라 하였다. 호미로 7,8인이 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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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카덩어리 2.상사저작권 : 가창자 : 유세열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 신대리 곡해설 : 목리의 상사류 받음구 전반부가 ‘어헐럴럴’인지 ‘어헐카’인지 불분명하다. 상사류의 메김구도 길어져 참고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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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카덩어리 2.에염소리저작권 : 가창자 : 1.이규은 2.함봉산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소양리 곡해설 : 2. 에염쌀 때의 옹골소리 류는 선입후제창으로 가창되는 긴 입말이 그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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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1.얼카뎅이야 2.위여차저작권 : 가창자 : 이행인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곡해설 : 2. 에염소리<보령 25②>는 아시맬 때나 만물 맬 때나 두루 불리울 것이 예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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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노천 만물소리저작권 : 가창자 : 이행인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곡해설 : 노천리 김현건 창의 받음구 예는 “에-헤 헤에헤에 헤에헤이야-,에이여-허허,에허이 히이 여허어-,어허 허- 허어 허이,놀고호 놀세 -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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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노천 만물소리저작권 : 가창자 : 김현건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곡해설 : 받음구 3회 가창중 제2,3회 것을 채보함. 첫회도 이와 비슷함. 선율이 안정적임. 솔(S1)줏대선법(솔 아래로 출현음이 있으나 솔을 기초로 하는 오음음계)에 속한다. 노천리 이행인 창의 받음구 예는 “에헤-야, 에헤-헤- 헤이,이야-, 여어, 놀고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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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매기소리] 궁포 만물소리저작권 : 가창자 : 정진옥 녹음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천북면 궁포리 곡해설 : 손으로 만두레때 부른다. 후렴이 없다. 한패가 (A)를 부르고나면 다른 한패가 (B)를 부른다. 호미로 아시맬 때는 얼카덩어리를 부른다. |
보령시는 충청남도의 서해안에 위치한다. 북으로는 홍성군의 서부면 ․ 결성면 ․ 은하면 ․ 광천읍 ․ 장곡면과 경계한다. 홍성군의 서부면 ․ 결성면과 보령시의 천북면 사이엔 모산만(茅山灣)이 있다. 북동으로는 청양군의 화성면․사양면, 동으로는 부여군의 외산․내산․홍산․옥산면에, 남으로는 서천군의 판교․자인․서면에 인접한다.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이 뻗어있어 ‘해안 산악지대’라고까지 일컬어진다. 차령산맥이 경기도와 충북의 경계 및 충남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연속성과 고도가 낮지만, 보령시 지역에 이르러서는 해발 600~700m 정도로 기복이 급증한다. 산지의 방향은 남남서이다. 아차산(424.4m)․오서산(790.7m)이 홍성군과의 경계를 이루웠고, 성태산(631m)․문봉산(600m)․만수산(432.2m)․월명산(544m) 등이 부여군과의 경계에 있다. 서천군 판교면과의 경계엔 장태봉(366.5m)이 자리한다. 차령산맥이 오서산에 멈춘 그 서쪽의 들과 북쪽으로는 예산군의 가야산까지 이은 들의 내포(內浦)지방 아래쪽 지역이 보령시이다. 하천으론 대천천이 시의 중심을 흐르며, 그밖에 웅천천, 남포천 등이 그 유역에다 들을 형성한다. 보령지방의 지형을 대략 주포면 보령리로부터 웅천만구(熊川灣口)를 잇는 선을 경계로 하여 동부의 산지(山地)와 서부의 저지(低地)로 나누어 본다면, 청라면․성주면․미산면 등지는 전자에 천북면․오천면․주포면․주교면․대천동․남포면․웅천읍 등지는 후자에 속한다.
보령지방엔 청동기시대의 묘제인 고인돌 290여개가 주로 서해안지역에 산재해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대개가 남방식 지석묘이지만, 남포면 양기리 소재의 것 등엔 굄돌이 발견된다. 마한 때엔 만로국(萬盧國)이라는 부족사회가 남포면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백제 때에는 천북면을 제외한 보령방면에 2개의 현, 즉 남포면 일대의 사포현(寺浦縣)과 주포면 일대의 신촌현(新村縣)이 존재한다. 백제가 웅천성, 사비성으로 천도함에 따라 오천항(鰲川港)은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백제의 관문이 되었다.
보령시 지역은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과거의 보령군․남포군․오천군을 보령군으로 통폐합하여 새로이 출범되었다. 옛 보령군은 주포를 중심으로한 북부 보령시 지역으로 백제시대엔 ‘신촌현’으로 불리우고 통일신라 때엔 신읍현(新邑縣)으로 불리우다가 고려 태조23년에 보령현으로 개정되었으나 홍주(洪州)에 속하게 되었으며, 1895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보령군으로 개칭되었다. 남포군은 남포면을 중심으로한 남부 보령시 지역으로 백제시대의 사포현 방면이다. 오천군은 조선 태조 이래의 옛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을 중심으로 생긴 군으로, 오천면을 중심하여 서북부와 도서지역이 이에 해당한다.
1914년 이후의 보령군은 주포면(周浦面)․청소면(靑所面)․대천면(大川面)․청라면(靑蘿面)․남포면(藍浦面)․웅천면(熊川面)․주산면(珠山面)․미산면(嵋山面)․오천면(鰲川面)․천북면(川北面)의 10개면 110개리를 관할하였다. 1962년엔 대천면이 대천읍으로 승격되고 또 1986년도엔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되면서 보령군에서 분리되었다가 1995년에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되면서 보령시로 개칭되었다.
1986년에 미산면 성주출장소가 성주면(聖住面)으로 승격되었고 1989년엔 주포면 주교출장소가 주교면(舟橋面)으로, 1995년엔 웅천면이 웅천읍으로 승격하였다.
2005년 현재 보령시는 1읍(웅천읍) 10개면(주포․주교․오천․천북․청소․청라․남포․주산․미산․성주면) 5개동(구 대천시 지역의 대천1동~대천5동)의 16개 구역으로 행정이 이루어진다. 서해안엔 보령시 소속 유인도가 18개, 무인도가 62개 된다.
2001년도 보령시 [통계연보]에 의거하면, 보령시 총면적에 대해 임야는 60%, 논은 19.5% 된다. 또한, 각 읍면동의 개별 전체면적에 대한 임야비율을 계산해 보면, 임야비율은 성주면이 92.4%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은 미산면(78.3%)>청라면(69.7%) 이다. 임야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남포면(36.7%)이며, 그 다음은 대천동(44.1%)과 주포면(45.2%) 및 주교면(46.2%)이다. 주교면이 분리되어 나가지않았던 1989년 이전의 주포면의 임야비율을 위의 [통계연보]에 의거하여 구하면 45.9%가 되며, 그 논비율은 27.5%가 된다. 마한 때의 만로국이 평지가 가장 많은 남포면에 위치하였음과, 백제시대의 사포현과 신촌현이 각각 남포면과 주포면일대의 평지를 선호하여 세워졌음을 이해하게 된다.
논비율은 남포면(39.9%)이 가장 높고 성주면(1.7%)이 가장 낮다. (임야+논)의 비율은 모두 7할이 넘되 성주면(94.1%)이 제일 높고 주포면(70.4%)이 제일 낮아 주포면에서는 평지가 논이외의 용도로 많이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보령지역 민요녹음은 1987년과 1990년, 2002년 및 2005년에 실시되었다.
이 기간에 방문 내지 녹음된 마을은 대천2동․대천4동(명천동)․대천5동(남곡1동 탑동), 웅천읍 노천리, 남포면의 달산리․봉덕리․제석리․창동1리(농장), 미산면의 내평리․풍산리․풍계리․남심리, 성주면의 개화리와 성주2리, 오천면의 소성2리․삽시도리․녹도․장고도, 주교면의 신대리(목리)․은포리․주교리, 주산면의 야룡리․금암4리(청석교)․야룡리․증산리․화평리(약현),관 주포면 산리, 천북면의 궁포리와 장은리, 청라면의 소양리․의평1리(갬발)․장산리․장현2리(명대)․황룡2리(송중), 청소면의 재정리․죽림리(마동)․진죽리 등이다. 38여개의방문 마을 중 논매기소리를 녹음한 곳은 대천5동,웅천읍 노천리, 남포면 달산리, 오천면의 소성2리와 장고도, 주교면 신대리, 주포면 산리, 천북면 궁포리, 청라면의 소양리․의평1리(갬발)․장산리․․황룡2리(송중),청소면의 재정리․죽림리(마동)과 진죽리 등 15개마을이다.
청소면 재정리(才井里)에서는 사변 이전까지 두레로 논맸다. 김중현(1936년생.토민)이 논매던 시절 논이 밭보다 더 많았으며, 그당시 120가구(현재는 60가구)가 살았다. 모심고나서 20일 있다가 ‘걸망’했다. 열흘 후에 호미 로 아시매기를 했으며, 또 열흘이 지나고서 두벌을 호미로 맸다. 두벌후 열흘이 지나면 손으로 만물을 맨다. 두레논매기 때는 1가구 1명씩 나와 100여명이 두레논을 맸다. 농본기, 영기들을 앞세웠고, 꽹,징,장구,북수가 뒤따랐다. 소고는 없었다. 만물매고나서 소타고 들어오는 장면이 없다. 모심으면서는 노래를 안불렀다.
청라면 황룡리(黃龍里)는 1,2리가 있으며 1리는 용두마을, 2리는 송중(松中)마을이다. 송중마을에서는 양력 4월5일에 볍씨(씨나락)를 담그며, 4월 15일 ~ 4월 20일에 모자리를 만든다(곡우 낙종). 6월 7,8일 망종때 올모를 심고, 하지때 중모를 심는다. 비가 안오면 늦모를 소서까지도 심었다. 모심은지 20일 후에 걸망한다. 또 10일 후에 호미로 애벌매고 10일후에 호미로 두벌매며 그다음 10일후에 손으로 만물맨다.
청라면 장현2리 명대에서는 망종때 모심는다. 하지때 심으면 너무 늦다. 보리망종때 주로 심는다. 모심고나서 10일 있다가 걸망(모가 뜨는 걸 잘 꽂고, 돌피같은 것 있으면 걷어내고 뽑고 한다)한다. 모심고나서 한달 후에 호미질. 호미질 후 10일 후에 호미로 두벌 맨다. 두벌후 20일 지나 손질한다.(이영재)
남포면 창동1리에서는 모심고나서 한달 반만에 논을 매었다(초벌 또는 아시). 두벌은 15일만에 맨다. 20일후에 만물 맨다. 유월유두때 두벌두레가 나간다. 창동리에서는 옥동리,봉덕리,명철리 농악대가 들어왔다. 가난한 사람의 논일은 무료로 도와 주었다. 칠석때 두레먹기 때면 열마지기 논있는 사람은 돈 얼마씩을 먹고 놀라고 내었다. 어른들이 인정해줘야 어른 품앗이에 들므로 칠석날 행사에 성년식 격인 진사술을 낸다. 12마지기 배미를 스물넷이 매었다.(황영수 ;1934년생.토민)
미산면 남심리에서는 초벌때는 호미로 파엎어두고 10~20일후에 두벌맬 때는 호미로 덩어리를 판판하게 펼쳐버린다. 만물은 손으로 훔친다.(오복규.1932년생)
성주면 개화1리의 전체논은 15ha(45,000평)된다. 아시와 두벌은 호미로, 만물은 손으로 매었다. 건두레라고 하여 음력 7월보름날 놀았다. 돈있는 사람이 술내고 해서 먹고 노는 걸 12,3세때 보았다. 왜정지나고서도 몇 번 하고 말았다. 하지무렵에 모심었다.(박성기.1934년생)
오천면 장고도에서는 음력 3월말에 볍씨 담근다. 4월말에 모자리한다(소로 갈고, 쓰레로 고르고 물을 쪽 빼서 2,3일 말린다음 오전 또는 오후로 바람이 잔잔한 시간에 낙종한다). 1개월 남짓후 10명정도가 모찐다. 모찌기소리는 없다. 모심을 때는 15~20명이 품앗이 또는 삯을 낸다. 품앗이는 삯의 절반정도의 비용이다. 동네 총회에서 그해의 품값을 정한다. 그물깁는 사람의 품값이 제일 비싸다. 논이 많은 집은 10마지기 정도이며 1마지기에 2인꼴로 심는다. 예전에 논에 꼴뚜기가 많아 꼴뚜기 잡으러다니는 장난꾼도 있었다. 만물에 흙탕물만 치고다니는 사람을 ‘꼴뚜기’라 했다. 잘뛰어 가는 사람을 일꼴뚝(제일 앞에 뛰어가는 사람), 이꼴뚝, 삼꼴뚝이라고 했다. 일꼴뚝과 이꼴뚝 사이는 5m정도 떨어진다. 제일 늦게 오는 사람에게 버리끝 돌리라고 소리지른다. 모심고나서 15일후에 손질한다(돌아다니며 피뽑는다-걸망). 손질후 10일 있다가 호미로 파 엎었다. 만물은 호미후 10일만에 손으로 한다. 호미로 7,8인이 맸다. 혼자 논매는 것을 ‘호락질’이라 한다.(편무안)
오천면 소성2리에서는 논매고 나서 마을로 돌아올 때 총각대방이 용기를 들고 들어온다(최은철).
위의 예들을 종합해 보면, 보령지방에서는 양력 4월5일에 볍씨(씨나락)를 담그며, 4월 15일 ~ 4월 20일에 모자리를 만든다(곡우 낙종). 6월 7,8일 보리망종때 올모를 심고, 하지(양력 6월21일경)때 중모를 심는다. 비가 안오면 늦모를 소서까지도 심었다. 모심고나서 20일 있다가 ‘걸망’했다. 열흘 후에 호미 로 아시매기를 했으며, 또 열흘이 지나고서 두벌을 호미로 맸다. 남포면 창동1리에서는 유월유두때 두벌두레가 나갔다. 두벌후 10일 내지 20일 사이에 손으로 만물을 맨다. 두레논매기 때는 1가구 1명씩 나오며 농본기, 영기 들을 앞세우고 농악수가 뒤따랐다. 칠월칠석날 건두레를 열었으며 논이 열마지기이상인 사람은 부자로 여겨져 건두레날에 돈 얼마씩을 찬조했으며, 어른 품앗이에 들려는 사람은 진사술을 내었다. 건두레 행사는 해방 후에도 몇 회 행해진 것 같다. 모심을 때는 1마지기에 1명꼴로, 논맬 때는 2명꼴로 작업했다.
보령시는 충청남도의 서남부, 차령산맥과 서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홍보지구 간척지를 경계로 홍성군 서부면·결성면, 천수만을 경계로 홍성군 은하면, 아차산·오서산을 경계로 홍성군 광천읍·장곡면에 접하고 있고, 동쪽은 오서산·스무티고개를 경계로 청양군 화성면, 성태산·백월산을 경계로 청양군 남양면, 문봉산·만수산·아미산을 경계로 부여군 외산면, 월명산을 경계로 부여군 내산면, 자명이고개를 경계로 부여군 홍산면, 옥녀봉을 경계로 부여군 옥산면에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장태산을 경계로 서천군 판교면, 군계 하천을 경계로 서천군 비인면, 부사지구 간척지를 경계로 서천군 서면과 접하고 있다. 서쪽은 서해 바다를 건너 태안군 안면읍과 고남면에 접하고 있다. 따라서 보령시는 4개군 14개 읍면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바다를 포함하면 5개군 16개 읍면에 둘러싸여 있다. 동서 길이 약 71km, 남북 길이 약 42km이지만 섬 지역을 제외하면 육지는 대략 남북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보령시의 수리적 위치는 주산면 신구리의 북위 36° 10′ 15″ ~ 천북면 장은리의 북위 36° 31′ 20″, 오천면 외연도리의 동경 125° 32′ 21″ ~ 미산면 도흥리의 동경 127° 38′ 31″ 지점이다.
보령시의 총 면적은 569.39㎢로 충청남도 전체 면적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도내 15개 시군 중 일곱 번째에 해당되므로, 중간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보령시의 행정구역은 1개 읍, 10개 면, 5개 동, 2개 출장소, 104개 통, 235개 행정리, 101개 법정리, 116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청라면은 69.88㎢(12.27%)로 가장 넓고 대천2동은 4.1㎢(0.72%)로 가장 좁다. 행정리 수는 웅천읍이 35개로 가장 많고, 주포면이 8개로 가장 적다. 반 수는 웅천읍이 98개로 가장 많고, 대천2동이 57개로 가장 적다.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서, 우리나라 서해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맥이 뻗어 있는 ‘해변 산악의 시(市)’이다. 태백산맥이 오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부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높이가 낮지만, 보령시에 이르러서는 해발고도 600~700m 정도로 높이가 급증된다.
보령시의 지형면의 고도는 지질 분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보령시 안에서도 해발고도가 높고 산지의 연속성이 가장 뚜렷한 지역은 중생대 대동계 퇴적암층의 분포지역과 일치하며, 구릉성의 평탄한 지형면이 발달되어 있는 지역은 선캠브리아기의 편마암류 분포지역과 중생대 및 시대 미상(未詳)의 화강암류의 분포지역과 일치한다. 선캠브리아기의 편마암류 암석의 분포 지역이 낮고 평평한 것은 오랜 지질시대 동안 풍화와 침식을 받아왔기 때문이고, 화강암류의 분포 지역이 낮고 평평한 것은 원래 지하 깊은 곳에서 결정(結晶)되어 형성되는 화강암류가 지표면에 노출되는 환경에서는 풍화에 극히 약하여 쉽게 침식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중생대 대동계의 퇴적암류의 암석은 보령시 안에 분포되어 있는 암석 중에서는 그 시기가 오래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퇴적암류는 땅속 깊은 곳에서 결정되어 형성되는 암석에 비하면 지표 및 지표 부근에서 형성되어 지표환경에서는 침식에 대한 저항력이 크기 때문에 높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보령시의 지형은 또한 지질구조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는데 본 시의 산지와 하천 및 해만(海灣)의 방향과 고도분포는 크게 보아 본 시의 지질구조와 일치한다. 본 지역 대동계의 퇴적암류는 습곡작용과 단층작용을 받았는데, 방향은 남남서이다. 따라서 산지의 방향도 남남서 방향인데 오서산(790.7m) · 진당산(350.5m) · 배재산(356.9m) · 봉황산(257.3m)의 선이나 성태산(631.0m) · 문봉산(600m) · 장군봉(680.4m) · 옥마산(601.6m) · 잔미산(416.8m) · 통달산(182.8m)의 선, 만수산(432.2m) · 양각산(467m) · 운봉산(337.3m) · 주렴산(350.9m) 선의 방향은 모두 남남서 방향으로 달리고 있다. 만입(灣入)의 방향도 모두 남남서 방향이다. 천북면과 오천면, 청소면의 경계가 되는 광천만, 대천천과 이어지는 대천만 등은 서남~서남서 방향이다.
하천의 방향 역시 본 지역의 지질구조를 반영하여 보령시에서 가장 큰 하천인 웅천천과 대천천은 남남서 방향으로 흐른다. 보령시를 대표하는 하천으로는 대천천과 웅천천을 들 수 있다. 웅천천은 성주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길이 약 36km의 하천이다. 하천의 한 줄기는 문봉산 밑에서 발원하여 성주면 성주리, 개화리를 통해 흐르고, 다른 한 줄기는 성태산 남쪽에서 발원하여 부여군 외산면을 통하여 남남서 쪽으로 흐른다. 성주리 개화리를 통하여 흐르는 하천은 중생대 대동계 남포층군의 중심지에서 발원하여 흐르기 때문에 깊은 계곡을 급하게 흐른다. 따라서 하천의 바닥에는 원마도가 비교적 높은 자갈이 퇴적되고 곳곳에 바위가 노출되어 있으며 주변의 평지는 좁다. 개화리 남쪽에 이르면 동족으로 90° 회전하여 도화담에 이르러 구조선 방향을 따라 남쪽으로 흐른다.
외산면을 통과하여 흐르는 하천 줄기는, 발원지는 남포층군 지역이지만 상류지역이 운모편암류 지역이기 때문에 비교적 저평하게 흐르다가 남포층군 퇴적암 산지를 절단하면서부터는 좁은 계곡을 흐른다. 이후 계곡은 좁아지고, 하천 바닥에는 원마도가 높은 큰 자갈이 퇴적되고 곳곳에 큰 바위가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부여군 외산면 소재지인 ‘임수대’ 마을에 이르면 서쪽으로 90° 회전하여 도화담에 이르러 구조선 방향을 따라 남쪽으로 흐른다.
외산면을 통과하여 흐르는 하천 줄기는, 발원지는 남포층군 지역이지만 상류지역이 운모편암류 지역이기 때문에 비교적 저평하게 흐르다가 남포층군 퇴적암 산지를 절단하면서부터는 좁은 계곡을 흐른다. 이후 계곡은 좁아지고, 하천 바닥에는 원마도가 높은 큰 자갈이 퇴적되고 곳곳에 큰 바위가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부여군 외산면 소재지인 ‘임수대’ 마을에 이르면 서쪽으로 90° 회전하여 도화담에 이르러 성주리 쪽에서 흘러오는 하천과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른다.
도화담에서 두 하천이 합류한 후 남쪽으로 흐르는데 이때부터는 계곡 사이가 넓어 주변에 많은 논이 개간되었다. 하천의 바닥은 원마도가 높은 자갈이 퇴적되어 있으며, 곳곳에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다. 중생대 퇴적암 지역을 남류하던 웅천천은 미산면과 웅천읍, 주산면 접경지역에서 감입곡류(嵌入曲流)하면서 퇴적암 산지를 절단하고 웅천읍 성동리로 흐른다.
감입곡류된 구간은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으며 하천 바닥에 큰 바위도 많이 노출되어 있다. 이 좁고 깊은 구간을 이용하여 보령댐을 축조하였다. 감입곡류된 구간을 지나면 넓은 평야가 나타나, 하천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퇴적이 이루어져 큰 하중도(河中島)를 2개나 형성하였다. 상류 쪽에 있는 하중도에는 큰 마을이 들어서 있으며(웅천읍 성동리 밧성굴), 하류쪽에 있는 하중도에는 석공장들이 들어서 있다(웅천읍 대천리 숙쟁이), 웅천천의 하류에는 원마도가 높은 자갈과 모래가 대량으로 퇴적되어 있어 예부터 건축자재로 이용되어 왔다. 또한 웅천천 하류는 간석지와 이어져 예부터 간척사업이 이루어졌고, 웅천천에서 용수를 공급하였다.
대천천은 보령 지방에 탁월하게 나타나는 퇴적암인 중생대 남포층군의 주향인 남남서방향 산지 사이를 흐르기 때문에 산맥 방향과 일치하여 남남서 방향으로 흐른다. 대천천은 크게 2개의 지류가 있는데 하나는 오서산 동남쪽에서 발원하여 흐르고 하나는 성주산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오서산 쪽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과거에는 화암천(花巖川)이라고 불렸다고도 하는데, 해발 약 500m인 ‘구래바위’에서 발원하여 흐른다. 상류 지역에 ‘명대저수지’와 ‘장현저수지’가 있는데 장현저수지 위쪽은 계곡에 큰 바위들이 노출되어 있다. 장현저수지 아래쪽도 비교적 급경사를 이루어 하천 바닥은 원마도가 낮은 자갈이 퇴적되어 있다. 장현저수지 아래쪽은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어, 장현저수지 물을 이용하고 곳곳에 보(洑)를 축조하여 용수를 공급한다.
옥계초등학교 앞에서는 하천이 바위와 부딪쳐 ‘용못’이라고 불리는 깊은 못을 형성하여 예부터 기우제 장소로 이용되었다. 청라면 옥계리 원옥계 근처는 하천이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기 때문에 산기슭을 침식하여 높은 절벽을 형성하였다. 바위 절벽 위에는 1669년에 새긴 ‘玉溪’라는 글씨가 있다. 라원리 쪽을 흐르는 하천은 성주산 줄기인 성태산(631m)과 백월산에서 발원한다. 성태산 쪽에서는 대략 해발 450m 고도에서부터 하천을 형성하고 백월산 쪽에서는 해발 250m 정도에서 하천을 형성한다. 두 줄기의 하천은 월티저수지에서 만나는데 저수지 상류 지역의 하천 바닥은 모두 자갈이나 바위이다.
오서산과 성주산에서 각각 발원한 두 하천은 청라면과 죽정동 접경에서 만나 흐르는데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여 넓은 평지로 나서게 된다. 이 좁은 골짜기에 청천저수지 제방을 축조한 것이다. 청천저수지 아래쪽에도 들은 넓지만 하천은 비교적 급하게 흘러 바닥에는 자갈이 퇴적되고 기반암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청천교 부근, 셰일). 과거에는 대천천의 하류 지역에 수많은 보(洑)를 축조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청천저수지의 축조를 대부분 없어지고 가장 하류에 있던 성업사보만 남아 있다. 대천천의 유역(流域)은 청천저수지 상류지역에서는 청라면 지역과 일치한다. 좁은 골짜기를 통과하며 유역면적이 좁아 집중호우 시 홍수의 염려가 크다.
보령시의 논매기소리로는 얼카덩어리 류, 궁포리 산요, 노천 만물소리, 먼들소리, 술미 및 상사 류 등이 있으며, 보령시의 남부 지역에 비해 북부 지역에서 그 수가 많으나, 특기할 정도는 아니다.
얼카덩어리 류는 충남을 대표하는 논맴소리로서, 홍성·서산·당진과 같은 서북부 충남 지방을 문화중심이다. 문화중심인 서북부 충남 지방에서 주변부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중심지인 홍성·서산·당진 등지와 이에 맞닿은 보령시 북부 지역에서 분포의 밀도가 높게 나타나며, 보령시의 남부로 갈수록 그 밀도가 현저히 낮아져, 웅천읍 노천리와 미산면 내평리에서 나타날 뿐, 이보다 남쪽 지역인 서천군에서는 그 분포 양상이 관찰되지 않는다. 이는 성주면과 남포면의 자연경계를 이루고 있는,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는 육마산지로 인한 전파장애가 다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보령시 중앙 동쪽에서 남남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이 산지는 산지 자체의 연속성과 험준함이 한반도 동쪽에서 나타나는 산맥에 비해 크지 않으나 서해안 지역과 같이 대체로 해발고도가 낮고 대부분 지역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서는 물자 또는 문화의 이동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된다.
먼들소리는 남곡동 탑골, 주포면 관산리, 청라면 소양리, 장현리, 웅천읍 노천리, 미산면 내평리에서 녹음된 논매기소리로 얼카덩어리를 제외하면 보령시 지역에서 가장 넓은 분포를 보이는 논매기소리이다. 얼카덩어리 소리에 비해 분포의 밀도는 높지 않으나, 보령시 최북단의 천북면과 최남단의 주산면, 옥마산 동사면의 곡저평야가 주요 농업지역인 성주면 등지를 제외하면 보령시 전체 지역에서 전반적으로 균등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와 유사한 소리로 보령시 남쪽에 위치한 서천군의 먼들소리가 있다. 따라서 보령시 지역과 서천군 지역의 먼들소리는 충청남도 남서부 지방이 문화중심이 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술미소리는 오천면 장고도에서 녹음되어 보령시 지역에서 나타나는 유일한 도서 지역의 논매기소리이다. 인접한 홍성군 결성면의 교항리와 서부면 어사리, 갈산면 동성리와 같이 해안에 인접한 지역에서도 술미소리가 나타나는 공통점을 보여 해안가 소리의 특징을 보인다. 이외에도 상사류는 주교면 신대리 목리마을과 청소면 진죽리에서 수집되었고, 궁포리 산요는 천북면 궁포리에서 수집되었으며, 노천 만물소리는 웅천읍에서 수집되었으나, 그 수가 적어 분포 양상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