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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은 북서부 전남에 위치한다. 동부에서 노령산맥이 남주하여 불갑산 등이 기복하여 동남쪽으로 장성군 ‧ 함평군과의 경계를 이루며, 북으로는 전북 고창군에 접한다. 서쪽으로는 홍농읍·법성면·백수읍·염산면 등이 서해에 면해있으며, 우리나라 3대 어장인 칠산(七山) 바다를 중심으로 대ㆍ소 60여군도로 형성된 낙월면도 있다. 영광읍 등, 중앙에는 비옥한 들이 곡창지대를 이룬다.
백제 근초고왕(345~375) 때부터 영광지역은 무시이군(영광읍 일대), 고록지현(古祿只縣)(백수, 염산일대), 아노현(阿老顯)(군남면 일대) 등의 군현(郡縣)이 설치되어 독립된 행정편제를 이루게 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16년(757)에 무시이군을 무령군으로 개칭하였으며, 고려 태조 23년(941)에 무령군을 영광군으로 고쳐 장성, 압해를 속국으로 무안군 소속이던 함농, 모평, 해제현과 장성군 소속이던 삼계현, 압해군 소속이던 염해현, 육창현을 속현으로 삼아 2군 6현을 다스렸으며 정주군 또는 오성군이라고도 칭했다.
고려 성종11년(992)에 조세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어 개경 이남에 12개 조창이 개설되자 부용포(지금의 법성)에 부용창의 조창이 개설되었다. 문종(재위 1046∼1083)때 모든 공청을 현 무령리로 옮기고, 부용포의 부용창을 법성포의 법성창으로 개칭하였다.
조선 초기에 남영 북악이라 하여 남쪽에는 영광, 북쪽에는 황해도 연악군을 옥당골이라 칭하였으며, 남도의 28개 고을의 조세를 관할하는 지역으로 중종 9년(1514)에 법성포 영(진)을 설치하여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배치하였으며 조선(租船)이 38척, 조군(租軍)이 1,344명이 되었고 법성성(城)을 축성하였다. 정조13년(1788)에 영광군은 29면 680리를 관할하였고 고종32년(1894) 전국 23부제 행정구역 개편시에 전주부 관할의 영광군이 되었다.1895년의 13도제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에 소속되고 1914년에 내동, 외동, 산남 등 6개 면이 장성군에 편입되었으며, 지도군의 낙월, 위도의 2개 면을 넘겨받아 12개 면을 관할하였다.
1955년에 영광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11면을 관할하였다. 1963년에 위도면을 전북 부안군으로 넘겨주었다. 1980년 백수면이 백수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군남면의 오동, 옥실리가 염산면으로 편입되고 군서면의 녹사, 학정, 송림, 신하리가 영광읍으로 편입되었으며, 1985년 홍농면이 홍농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3읍(영광‧백수‧홍농읍) 8개면(군남‧군서‧낙월‧대마‧묘량‧법성‧불갑‧염산면)을 관할한다.
2009년도 영광군 통계연보에 근거하여 각읍면의 개별 총면적에 대한 각각의 임야비율과 논비율이 높은 순서를 도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임야 |
낙월(76.5%)>불갑(66.7)>묘량(62.3)>군남(50.6)>대마(46.6)>백수(45.3)> 홍농(41.3)>염산(36.5)>법성(33.4)>영광읍(26.2)>군서(25.7%) |
논 |
군서(31.3%)>영광읍(29.3)>백수(27.2)>염산(26.8)>법성(26.3)>군남(26.0)> 대마(25.9)>불갑(21.3)>홍농(20.7)>묘량(16.8)>낙월(1.9%) |
서해의 섬인 낙월면을 제외하면, 개별 임야비율이 높다고해야 6할정도임을 볼 수 있다. 또한, 영광읍이나 군서면처럼 임야비율이 25%남짓인 평야지대인데도 논 이용도는 각기 29%나 31% 남짓밖에 되지않음도 볼 수 있다.
녹음지역은 백수읍 장산3리 하둔마을과 천정1리 평지마을, 영광읍 우평리, 홍농읍 진덕리와 칠곡리 칠암마을, 대마면 성산리 대성마을과 대마면 복평1리 및 대마면 송죽리 죽동마을, 묘량면 삼효리 효동(효골)마을과 운당리 박죽마을, 운당1리 영당마을 및 덕흥리, 법성면 법성1리, 염산면 상계리 남계마을, 군남면 대덕리 한수마을과 동월리, 불갑면 방마리 봉동마을이다.
영광군은 전라남도의 북서단에 위치하여 남동쪽은 장성군, 서쪽은 황해바다, 남쪽은 함평군, 북쪽으로는 전북 고창군과 접해 있다. 영광군의 수리적 위치는 동경 126° 39′~126° 59′, 북위 35° 10′~35° 26′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의 읍과 8개의 면, 292개의 리로 구성되어 있다.
영광군의 인구수는 55,632명(2017년 기준)이며, 면적은 474.96㎢ 전라남도 면적(12,345.21㎢)의 3.85%를 차지한다. 전라남도 22개 시·군 중 9번째로 면적이 작다. 전답으로 이용되는 면적은 173.91㎢로 영광군 전체 면적의 36.62%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밭은 60.37㎢, 논은 113.54㎢로 이는 각각 영광군 전체 면적 중 12.71%, 23.91%이다(2017년 기준).
영광지역은 노령산맥의 지맥에 해당하는 고성산(古城山, 547m) · 태청산(太淸山, 593m) · 장암산(場岩山, 484m) 등이 장성군과 접하고 있으며, 북으로는 들녘을 이루면서 전북의 고창군과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불갑산(佛甲山, 518m) · 삼각산(三角山, 357m) · 군유산(君遊山, 405m) · 월암산(月岩山, 355m) 등이 함평군과 맞닿고, 서쪽으로는 가음산(歌音山, 206m) · 구수산(339m) · 봉화령(烽火嶺, 380m) · 인의산(仁義山, 165m) · 봉우산 · 금정산(金井山, 264m) 등이 서해와 접한다. 영광군은 전체적으로 넓은 평야지대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산지지형을 이루는 형태로 3등분된 지형적 특성을 갖는다.
영광지역의 하천들은 노령산맥의 지맥에 의하여 전남의 내륙지역과 분리되고, 영산강과 독립되어 있다, 각각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하는 하천이 평야지대를 거쳐 서해로 흐르는 상류이자 하류인 독립된 수계를 형성한다. 영광군내의 하천은 그 길이가 짧고 고도차가 완만하여 평소에는 유량이 적으나 우기에는 범람하여 수리 이용에는 좋지 않은 편에 속한다.
영광군의 중앙부를 분수령으로 남과 북에 각각 불갑천(佛甲川)과 와탄천(瓦灘川)이, 북서부에는 구암천(九岩川)이 흐른다.
영광군은 전남지역의 기후 구분에서 남부서해안형으로 구분된다. 이는 호남평야와 나주평야에 걸쳐 있고 바다에 접해 있는 지역을 의미하며, 겨울철에 북서계절풍과 바다에 의해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평야지역에 비해 연교차가 작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겨울철에 강수량이 많은 편이며 겨울과 봄철에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흐린 날이 많다.
영광군의 기상관측소는 2007년부터 관측이 시작되어, 30년 이상의 오랜 기간 기상상태를 종합하는 기후표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광군과 지리적 여건이 비슷한 목포시 지역의 기상대 관측 자료를 활용하여 기후 요소의 평년값을 나타내었다
요소 |
평년값 |
평균기온(℃) |
13.9 |
최고기온(℃) |
18.6 |
8월 평균기온(℃) |
26.1 |
최저기온(℃) |
10.3 |
1월 평균기온(℃) |
1.7 |
강수량(㎜) |
1,163.6 |
영광군에서 나타나는 논매기소리에는 얼싸절싸 류(절사절사, 얼싸헐싸, 아리사하 저리소, 얼싸절싸절싸- 만드리손가), 무삼 삼장 류, 세화자, 어리시고나 유사 곡(입말+마디오/묘량 진소리), 입말 류 진소리, 만들손가, 오헤로사, 방애로다, 짧은 입말류 및 에염소리, 대루야, 디여 계통, 어기야차, 육자배기 곡풍, 장원질소리 등이 있다.
얼싸절싸 류는 영광군과 영광군의 북쪽에 위치한 전북 고창군이 문화중심지에 해당하며, 고창군의 서부지역(성송 · 심원 · 대산면)과 동부 신림면에서는 논매기소리 또는 장원질소리로 분포한다. 무삼 삼장 류는 영광군의 남쪽에 위치한 함평지역의 서부가 전파의 중심지이며, 함평군 신광면 · 손불면 · 대동면 · 엄다면 등에서 논을 매러 들어갈 때 첫 소리로 불리기도 하였다.
영광군은 노령산맥의 지맥들로 인해 북서부와 동부~남부의 산지지역을 제외한 지역들은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영광지역의 하천 또한 노령산맥의 지맥으로 인해 전남의 내륙지역과 분리되고, 영산강과 독립되어 있는 특징을 갖는다. 따라서 이러한 지형 특성으로 인해 논매기소리 또한 평야지대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북서부와 동부~남부의 산지지역은 논매기소리가 평야지대에 비해 전파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영광지역의 논매기소리는 인접한 고창군, 장성군, 함평군 등의 지역에 의해 전파 등에 영향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군의 북부와 동부~남부의 산지지역은 타 지역과 장애물이 될 수 있었지만, 그중 완만한 능선과 곡저의 하천을 따라 소리의 전파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